핵심 요약
와인(wine)은 기본적으로 포도 또는 포도즙을 발효해 만든 술이다.
포도즙에 들어 있는 당을 효모가 이용하면 알코올과 이산화탄소가 생긴다. 발효가 진행되는 동안 포도의 달콤한 즙은 알코올과 산도, 향과 질감을 지닌 와인으로 바뀐다. 하지만 발효만으로 모든 와인이 비슷해지는 것은 아니다.
포도 품종, 포도가 자란 환경, 수확 당시의 익은 정도, 발효와 양조 방법, 숙성 방식이 함께 작용해 한 병의 성격을 만든다. 같은 품종으로 만든 와인도 산지와 빈티지, 양조자의 선택에 따라 전혀 다른 향과 맛을 보여줄 수 있다.
와인을 이해할 때 가장 먼저 기억할 원리는 이것이다.
와인은 포도의 맛을 그대로 병에 담은 음료가 아니라, 포도가 자란 환경과 익은 상태, 발효와 양조 과정이 함께 만들어낸 술이다.
따라서 와인을 경험한다는 것은 유명한 품종과 산지의 이름을 많이 외우는 일이 아니다. 잔에서 느껴지는 과일 향과 산미, 떫은맛, 알코올의 온기와 질감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하나씩 연결해 보는 일이다.
1. 어디까지를 ‘와인’이라고 할까
일상에서는 포도로 만든 술뿐 아니라 사과 와인, 복분자 와인, 매실 와인처럼 다른 과일로 만든 술에도 ‘와인’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상품명이나 생활언어에서는 자연스럽게 사용되는 표현이다.
그러나 와인을 전문적으로 분류할 때는 그 범위가 조금 더 좁다.
국제포도와인기구(OIV)는 와인을 신선한 포도 또는 포도즙을 완전하거나 부분적으로 알코올 발효해 얻은 음료로 정의한다. 즉, 별도의 설명 없이 와인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포도로 만든 발효주를 뜻한다. 사과나 배, 복분자처럼 다른 과일로 만든 술은 넓게는 과실주이지만, 포도 와인과 구별할 필요가 있을 때는 사과 와인이나 복분자 와인처럼 원료를 함께 밝힌다. 국가별 주류법과 표시 기준에 따라 세부 정의는 달라질 수 있다. 국제포도와인기구(OIV)
한국어의 ‘포도주’와 영어에서 온 ‘와인’은 기본적으로 같은 술을 가리킨다. 다만 오늘날에는 포도주보다 와인이라는 말이 훨씬 널리 쓰이며, 그 안에는 고요한 와인부터 기포가 있는 와인, 단맛이 남은 와인, 알코올을 보강한 와인까지 여러 형태가 포함된다.
그렇다고 지금부터 와인을 만날 때마다 법적 정의를 따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중요한 질문은 간단하다.
이 술은 무엇을 발효해 만들었는가?
와인숍이나 식당에서 만나는 일반적인 레드·화이트·로제·스파클링 와인은 대부분 포도에서 출발한다. 반면 제품명에 복숭아, 복분자, 사과 같은 다른 과일이 강조되어 있다면 포도 와인인지, 다른 과일을 발효한 과실주인지, 또는 와인에 과즙이나 향을 더한 와인 기반 음료인지 확인해볼 수 있다.
이 구별은 어느 쪽이 더 좋은 술인지 판단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원료가 다르면 발효에 들어가는 당과 산, 향기 성분이 다르고, 우리가 잔에서 기대할 수 있는 맛과 질감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2. 왜 대부분의 와인은 포도로 만들까
다양한 과일을 발효해 술을 만들 수 있는데도 와인의 중심에 포도가 자리 잡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잘 익은 포도에는 효모가 알코올로 바꿀 수 있는 당이 들어 있다. 동시에 와인의 신선함과 균형, 미생물학적 안정성에 중요한 산도 있고, 품종에 따라 서로 다른 향기 성분과 그 전구체도 지닌다. 전구체란 그 자체로 강한 향을 내지는 않지만 발효나 숙성 중 변해 특정 향의 바탕이 되는 물질을 말한다.
포도는 과육만 중요한 과일도 아니다.
과육에는 물과 당, 유기산이 주로 들어 있고, 껍질에는 색소와 타닌, 다양한 향미 관련 성분이 존재한다. 씨에도 타닌과 여러 페놀성 성분이 들어 있다. 특히 적포도 껍질의 색소와 껍질·씨에서 추출되는 타닌은 많은 레드 와인의 색과 떫은맛, 질감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여기서 타닌(tannin)은 덜 익은 감이나 진하게 우린 차를 먹었을 때처럼 입안이 마르고 조이는 느낌을 일으키는 성분이다. 타닌이 많다고 무조건 좋은 와인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와인에서는 구조와 질감, 숙성 가능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포도에는 이처럼 당·산·향·색·타닌을 형성할 재료가 한 열매 안에 함께 존재한다. 이 조합 덕분에 포도는 가볍고 산뜻한 화이트 와인부터 색이 짙고 타닌이 풍부한 레드 와인, 단맛이 남은 와인과 기포가 있는 와인까지 매우 다양한 술로 변할 수 있다.
하지만 포도 자체가 완성된 와인의 맛을 모두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같은 포도라도 언제 수확하는지, 껍질과 씨를 얼마나 접촉시키는지, 어떤 효모로 어느 온도에서 발효하는지, 어떤 용기에서 숙성하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포도는 와인의 가능성을 제공하지만, 그 가능성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는 재배와 양조 과정에서 결정된다.
3. 와인용 포도와 식용 포도는 무엇이 다른가
마트에서 보는 포도는 대체로 알이 크고 과육이 많다. 껍질이 얇고 씨가 없거나 먹기 편하며, 송이의 모양도 보기 좋도록 재배된다. 생으로 먹었을 때 달고 아삭하거나 부드러운 식감이 중요한 선택 기준이 된다.
와인용 포도는 우선순위가 다르다.
일반적인 양조용 포도는 식용 포도보다 알이 작은 경우가 많다. 포도알이 작으면 과육에 비해 껍질이 차지하는 비율이 커진다. 껍질에 있는 색소와 타닌, 향미 관련 성분을 활용해야 하는 레드 와인에서는 이 비율이 특히 중요하다. 씨가 있는 품종도 많고 껍질이 질기거나 두꺼워, 생으로 먹을 때 식용 포도만큼 편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와인용 포도의 특징을 단순히 “식용 포도보다 당도가 높다”라고 설명하면 정확하지 않다.
식용 포도 중에도 충분히 높은 당도를 지닌 품종이 많다. 샤인머스캣처럼 생식용으로 인기가 높은 포도도 매우 달게 익을 수 있다. 반대로 서늘한 지역에서 수확한 와인용 포도는 따뜻한 지역의 식용 포도보다 당도가 낮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당도 하나가 아니라 당과 산의 균형, 껍질과 씨의 비율, 향기 성분, 성숙 상태와 양조 적성이다.
와인을 만들 포도는 알코올을 형성할 만큼 당이 익어야 하지만, 당만 높고 산도가 지나치게 낮으면 완성된 와인이 무겁고 흐릿하게 느껴질 수 있다. 껍질의 색과 향이 충분히 발달했는지, 씨와 껍질의 타닌이 거칠지 않은지, 병해나 부패 없이 건강한지도 중요하다.
여기서 포도의 ‘익음’은 하나의 숫자로만 판단하기 어렵다.
당이 충분히 축적되는 당 성숙, 산도가 변화하는 상태, 껍질·씨의 타닌과 색소가 발달하는 페놀 성숙, 품종 고유의 향이 나타나는 향미 성숙이 반드시 같은 속도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조자는 당도만 보고 수확일을 정하지 않는다. 만들고자 하는 와인의 스타일에 따라 당·산·향·껍질과 씨의 상태를 함께 살핀다.
캠벨얼리는 어느 쪽일까
한국인에게 익숙한 캠벨얼리(Campbell Early)는 식용 포도와 와인용 포도의 경계가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캠벨얼리는 국내에서 오랫동안 생식용 포도로 널리 재배되어 왔다. 특유의 진한 포도 향과 새콤달콤한 맛 때문에 생과로 친숙하지만, 국내 와이너리에서는 레드 와인과 로제 와인 등의 양조에도 사용한다. 실제로 캠벨얼리를 이용한 와인의 발효와 품질 특성을 다룬 국내 연구도 꾸준히 이루어져 왔다.
다만 생식용으로 재배·수확한 캠벨얼리를 발효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균형 잡힌 와인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재배 환경과 수확 시점에 따라 원하는 알코올 도수를 얻기에 당이 부족하거나 산도가 높을 수 있고, 품종 특유의 향이 완성된 와인에서 강하게 나타날 수도 있다. 양조자는 이런 원료의 특성을 고려해 수확과 발효, 산도와 추출을 조절한다.
따라서 식용 포도와 와인용 포도는 포도에 붙어 있는 절대적인 신분표라기보다 어떤 목적을 중심으로 선발하고 재배하며 사용하는가에 따른 구분에 가깝다. 카베르네 소비뇽이나 피노 누아처럼 주로 와인 생산을 위해 재배되는 품종이 있는 반면, 캠벨얼리처럼 생식과 양조에 모두 이용되는 포도도 있다.
4. 포도즙은 어떻게 와인이 되는가
포도즙이 와인이 되는 핵심은 알코올 발효다.
효모(yeast)는 포도즙에 들어 있는 포도당과 과당 같은 당을 이용해 에너지를 얻고, 그 과정에서 주로 에탄올과 이산화탄소를 만든다. 이를 간단히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포도즙의 당 → 효모의 발효 → 알코올 + 이산화탄소 + 열과 여러 향미 물질
일반적인 고요한 와인, 즉 잔에서 지속적인 기포를 내는 것이 목적이 아닌 와인에서는 발효 중 생긴 이산화탄소의 대부분이 밖으로 빠져나간다. 스파클링 와인은 이 기체를 와인 안에 보존하거나 다시 생성하도록 만드는 별도의 과정이 필요하지만, 이는 뒤의 스파클링 와인과 샴페인 글에서 자세히 다룬다.
발효가 시작되면 포도즙의 당은 점차 줄고 알코올 도수는 올라간다. 그렇기 때문에 달콤한 포도로도 단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드라이 와인을 만들 수 있다.
여기서 드라이(dry)는 와인에 수분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일상적인 와인 표현에서는 발효 후 느껴지는 단맛이 적은 상태를 가리킨다. 포도에서 잘 익은 복숭아나 파인애플 같은 향이 풍부하게 나더라도 실제 잔당이 적으면 드라이한 와인일 수 있다. 과일 향이 달콤하게 느껴지는 것과 실제로 당이 남아 있는 것은 구별해야 한다.
반대로 발효가 끝난 뒤에도 당이 남아 있으면 단맛을 느낄 수 있다. 효모가 모든 당을 소비하기 전에 발효를 멈추거나, 당이 매우 높은 포도를 사용하거나, 발효 후 단맛을 조절하는 등 여러 방법으로 스위트 와인을 만들 수 있다. 구체적인 방식은 WINE 27에서 다룬다.
효모는 어디에서 오는가
흔히 와인은 “포도 껍질에 붙어 있는 자연 효모가 발효시킨다”고 설명한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충분히 정확한 설명도 아니다.
포도와 포도밭에는 여러 미생물이 존재한다. 수확된 포도와 함께 양조장으로 들어오는 효모도 있다. 동시에 양조장의 압착기, 발효조, 배럴과 주변 환경에는 그 공간에 자리 잡은 미생물 군집이 존재할 수 있다. 따라서 별도로 효모를 넣지 않고 시작하는 자발적 발효에는 포도에서 유래한 미생물뿐 아니라 양조 환경의 미생물도 함께 관여할 수 있다.
처음에는 여러 종류의 효모가 활동하다가 알코올 농도가 높아지면 알코올 환경에 잘 적응하는 Saccharomyces cerevisiae 계열이 발효의 중심이 되는 경우가 많다.
다른 방법은 양조용으로 선발·배양한 효모를 넣는 것이다. 이를 흔히 배양 효모 또는 상업 효모를 이용한 접종 발효라고 한다. 양조자는 발효가 안정적으로 진행되도록 하거나, 원료와 원하는 스타일에 맞는 특성을 얻기 위해 특정 효모 균주를 선택할 수 있다.
자발적 발효와 배양 효모 발효 중 어느 쪽이 무조건 더 자연스럽거나 더 좋은 와인을 만든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자발적 발효는 여러 미생물이 관여하면서 복합적인 향미를 만들 가능성이 있지만 발효가 느려지거나 멈추고, 원하지 않는 향이 생길 위험도 있다. 배양 효모는 발효를 예측하고 관리하기 쉽지만, 그렇다고 모든 와인의 향을 똑같게 만드는 것도 아니다. 포도 품종과 상태, 발효 온도, 영양분, 산도, 양조 방식이 함께 결과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호주와인연구소(AWRI)도 자발적 발효와 접종 발효에서 효모가 향기 성분과 감각 특성에 미치는 차이를 연구하고 있다. 호주와인연구소의 효모 자료
5. 포도의 맛과 와인의 맛은 왜 다를까
잘 익은 포도를 먹으면 단맛과 산미, 품종 특유의 포도 향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 포도로 만든 와인이 반드시 달콤한 포도주스 맛을 내는 것은 아니다.
가장 큰 이유는 발효다.
효모가 당을 소비하면 단맛은 줄고 알코올이 생긴다. 동시에 에스터, 고급 알코올과 같은 여러 휘발성 물질이 형성되어 생포도에서는 두드러지지 않던 향을 만든다. 그래서 와인에서 사과, 배, 복숭아, 체리, 딸기, 꽃, 허브, 향신료 등을 떠올리게 하는 향을 느낄 수 있다.
이 표현들은 대개 실제로 그런 재료를 넣었다는 뜻이 아니다.
와인의 여러 향기 물질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과일·꽃·식물·향신료의 향과 비슷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익숙한 이름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와인에서 체리 향이 난다는 말은 체리를 넣었다는 뜻이 아니라, 그 와인의 향에서 체리를 떠올리게 하는 공통점을 발견했다는 의미다.
물론 예외는 있다. 허브나 향료를 더한 베르무트 같은 가향 와인이나 과즙과 향을 첨가한 와인 기반 음료도 존재한다. 따라서 일반 와인의 향미 묘사와 실제 첨가 재료는 라벨과 제품 유형을 통해 구별해야 한다.
포도즙과 와인의 차이는 향에만 있지 않다.
레드 와인을 만들 때 포도즙이 껍질과 씨에 접촉하면 껍질의 색소와 타닌이 추출될 수 있다. 이로 인해 색이 진해지고 입안이 마르거나 조이는 느낌이 생긴다. 화이트 와인에서도 발효 방법과 효모 찌꺼기와의 접촉, 숙성 용기에 따라 질감과 향이 달라질 수 있다.
오크통을 사용하면 바닐라, 향신료, 토스트, 나무 등을 떠올리게 하는 향이 더해질 수 있다. 병 속에서 시간이 흐르며 향이 변화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와인이 오크 숙성을 하는 것도 아니고, 오크 향이 강하다고 더 좋은 것도 아니다.
이러한 향의 출처는 뒤에서 다음과 같이 더 깊게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 포도 품종과 재배에서 비롯된 향
- 발효와 양조 과정에서 생긴 향
- 숙성과 시간의 변화에서 생긴 향
지금은 와인의 향이 생포도의 향을 단순히 보존한 결과가 아니라는 점만 기억해도 충분하다.
6. 한 병의 와인은 무엇으로 달라지는가
와인의 성격은 한 가지 조건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실제 와인을 경험할 때는 다음 요소의 조합으로 보는 것이 좋다.
품종 × 산지와 빈티지 × 포도의 성숙도 × 양조 × 숙성
첫째, 품종
포도 품종은 와인이 보여줄 수 있는 향과 맛의 기본적인 성향에 영향을 준다.
카베르네 소비뇽은 대체로 색과 타닌이 충분한 레드 와인을 만들 잠재력이 있고, 피노 누아는 비교적 껍질이 얇아 색이 옅고 섬세한 향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샤르도네는 재배 환경과 양조 방식에 따라 산뜻하고 날렵한 와인부터 풍부하고 크리미한 와인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품종명만으로 완성된 맛을 단정할 수는 없다. 피노 누아가 언제나 가볍고 샤르도네가 언제나 버터 향을 내는 것은 아니다.
둘째, 산지와 빈티지
포도가 자란 곳의 기온과 햇빛, 강수량, 고도, 지형과 토양은 포도가 익는 과정에 영향을 준다. 같은 품종도 서늘한 환경에서는 산도가 비교적 선명하고 신선한 과일을 떠올리게 할 수 있으며, 따뜻한 환경에서는 더 잘 익은 과일 향과 높은 알코올의 풍성한 인상을 보일 수 있다.
빈티지(vintage)는 일반적으로 와인을 만드는 포도를 수확한 해를 뜻한다. 같은 포도밭도 해마다 날씨가 다르므로 수확량과 포도의 익은 정도, 산도와 향미가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서늘한 산지는 항상 가볍고 따뜻한 산지는 항상 무겁다는 식으로 단순화해서는 안 된다. 품종과 고도, 바다의 영향, 포도밭 관리, 수확 시점과 양조 방식이 함께 작용한다.
셋째, 포도의 성숙도와 수확 시점
포도를 일찍 수확하면 대체로 당은 낮고 산도가 높으며, 향이 풋풋하게 느껴질 가능성이 있다. 더 익힌 뒤 수확하면 당이 늘고 산도는 낮아지며, 과일 향도 더 잘 익은 방향으로 변할 수 있다.
그러나 늦게 수확한다고 무조건 더 좋은 포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지나치게 익으면 산도와 신선함을 잃거나 알코올이 과도하게 높아질 수 있고, 비와 부패 같은 위험에 노출될 수도 있다.
좋은 수확 시점은 가장 높은 당도를 얻는 날이 아니라, 만들려는 와인에 필요한 당·산·향·껍질과 씨의 상태가 적절하게 만나는 때다.
넷째, 양조
포도를 으깬 뒤 껍질과 함께 발효할지, 먼저 즙을 짤지, 어느 온도에서 어떤 효모로 발효할지에 따라 와인의 색과 향, 타닌과 질감이 달라진다.
발효 후에도 여러 선택이 남는다. 산미를 부드럽게 바꾸는 젖산발효를 할지, 효모 찌꺼기와 접촉시킬지, 여러 품종이나 포도밭의 와인을 섞을지 등이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이 과정은 WINE 06에서 수확부터 병입까지 차례로 살펴본다.
다섯째, 숙성
발효를 마친 와인은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 콘크리트 용기, 오크통 등 서로 다른 용기에서 숙성할 수 있다. 용기는 단순히 와인을 보관하는 그릇이 아니다. 산소와 접촉하는 정도, 향의 추가 여부, 질감이 변화하는 방식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병입 후에도 와인은 변한다. 다만 모든 와인이 오래 보관할수록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젊을 때의 신선한 과일 향을 즐기도록 만든 와인이 있는가 하면, 적절한 시간 동안 숙성하면서 향과 질감이 조화를 이루는 와인도 있다.
같은 샤르도네가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
샤르도네는 이 다섯 요소의 조합을 이해하기 좋은 사례다.
프랑스 북부의 서늘한 샤블리에서 만든 샤르도네는 대체로 산도가 선명하고 레몬이나 풋사과를 연상시키는 날렵한 인상을 보일 수 있다. 오크 사용은 생산자와 등급, 스타일에 따라 다르지만, 신선함과 긴장감이 중심이 되는 경우가 많다.
따뜻한 캘리포니아에서 충분히 익은 샤르도네를 수확하고 오크 숙성과 젖산발효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잘 익은 복숭아나 파인애플, 버터, 바닐라를 떠올리게 하는 풍부한 와인이 만들어질 수 있다.
샹파뉴에서는 샤르도네로 기포가 있는 와인을 만들 수 있다. 샤르도네만으로 만든 샴페인은 블랑 드 블랑이라 부르며, 병 안의 2차 발효와 효모 찌꺼기 숙성을 통해 생포도나 일반 화이트 와인과는 또 다른 향과 질감을 보여준다.
세 와인은 모두 샤르도네에서 출발하지만 결과는 같지 않다.
이 비교에서 중요한 것은 샤블리, 캘리포니아, 샴페인의 특징을 지금 모두 외우는 것이 아니다. 품종은 와인의 정답이 아니라 출발점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다.
7. 와인을 처음 이해할 때 무엇을 보면 좋을까
와인을 처음 마실 때는 “좋은 와인인가?”부터 판단하려고 하기 쉽다. 하지만 WINE 01의 단계에서 더 중요한 것은 이 와인이 무엇이며 왜 이런 모습이 되었는지를 관찰하는 일이다.
한 병을 만났다면 우선 다음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무엇으로 만든 와인인가
포도로 만든 일반 와인인지, 다른 과일로 만든 과실주인지, 향이나 다른 재료를 더한 와인 기반 음료인지 확인한다.
어떤 포도 품종으로 만들었는가
라벨이나 상품 설명에 품종이 표시되어 있다면 이름을 기록한다. 처음부터 품종의 특징을 정확히 맞힐 필요는 없다. 같은 품종을 다시 만났을 때 비교할 기준을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
어디에서, 어느 해에 생산되었는가
국가와 산지, 빈티지를 살펴본다. 아직 산지의 기후나 등급을 모르더라도 정보를 함께 기록하면 나중에 비슷한 와인을 비교할 수 있다.
실제로 단맛이 있는가
과일 향이 풍부하다는 이유로 달다고 판단하지 않는다. 향에서 느끼는 달콤한 인상과 혀에서 느끼는 실제 단맛을 구별해본다.
포도 이외에 무엇을 떠올리게 하는가
사과, 레몬, 복숭아, 체리, 꽃, 허브, 후추, 바닐라, 빵처럼 떠오르는 것이 있는지 살펴본다. 정답을 맞힐 필요는 없다. 자신의 기억 속 냄새와 연결하는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
무엇이 가장 기억에 남는가
상큼한 산미인지, 입안이 마르는 타닌인지, 알코올의 따뜻함인지, 부드러운 질감인지, 마신 뒤 남는 향인지 생각해본다.
처음에는 “체리와 제비꽃 향, 중간 이상의 산도와 섬세한 타닌”처럼 전문적으로 말하지 못해도 괜찮다.
다음과 같은 기록이면 충분하다.
- 과일 향은 풍부했지만 실제 단맛은 거의 없었다.
- 향은 좋았는데 입안이 많이 떫게 느껴졌다.
- 처음에는 향이 약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과일 향이 더 잘 느껴졌다.
- 같은 샤르도네인데 전에 마신 것보다 더 상큼하고 가벼웠다.
- 알코올의 뜨거운 느낌이 강해 음식 없이 마시기 부담스러웠다.
이런 관찰이 쌓이면 ‘맛있다’와 ‘맛없다’ 사이에 더 많은 언어가 생긴다. 그때부터 자신의 취향도 구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8. 자주 혼동하는 개념
와인은 모두 포도로 만드는가
전문적이고 전통적인 의미의 와인은 기본적으로 포도 또는 포도즙을 발효한 술이다.
다만 일상과 상품명에서는 사과 와인, 복분자 와인처럼 다른 과일로 만든 술에도 와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런 경우에는 원료를 함께 확인하는 것이 좋다.
포도가 달면 와인도 달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발효 과정에서 효모가 포도즙의 당을 소비한다. 당이 대부분 발효되면 달콤한 포도로 만든 와인도 드라이하게 느껴질 수 있다. 반대로 일부 당이 남으면 단맛이 있는 와인이 된다.
달콤한 과일 향이 나면 스위트 와인일까
향에서 느끼는 달콤함과 실제 당의 맛은 다르다.
드라이한 와인도 잘 익은 복숭아, 파인애플, 딸기나 잼을 떠올리게 하는 향을 낼 수 있다. 단맛은 향의 이미지뿐 아니라 입안에서 실제로 느껴지는 당을 함께 판단해야 한다.
와인에서 체리나 바닐라 향이 나면 그 재료를 넣은 것일까
일반적인 와인에서는 대개 그렇지 않다.
포도 자체의 성분, 발효 과정에서 생긴 물질, 오크 숙성과 병 숙성의 변화가 체리나 바닐라와 비슷한 향을 만들 수 있다. 다만 실제로 허브·향료·과즙 등을 첨가한 가향 와인이나 와인 기반 음료도 있으므로 제품 유형을 확인해야 한다.
와인용 포도와 식용 포도는 완전히 별개인가
그렇지 않다.
두 용도는 중요하게 보는 특성과 재배 목적이 다르지만 경계가 완전히 고정된 것은 아니다. 캠벨얼리처럼 생식용으로 널리 소비되면서 와인 양조에도 사용되는 품종이 있다.
포도 껍질의 자연 효모만으로 와인이 만들어지는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자발적 발효에는 포도와 포도밭에서 유래한 미생물뿐 아니라 양조장과 양조 설비의 환경에 존재하는 미생물도 관여할 수 있다. 양조자가 선발·배양된 효모를 직접 넣어 발효하는 경우도 매우 흔하다.
오래 발효할수록 알코올 도수가 계속 높아질까
아니다.
만들어질 수 있는 알코올의 양은 우선 포도즙에 발효 가능한 당이 얼마나 있는지와 관련된다. 효모의 알코올 내성과 영양 상태, 온도, 산도와 발효 관리도 영향을 미친다.
당이 소진되거나 효모의 활동이 멈추면 시간이 더 흐른다고 알코올 도수가 계속 올라가지는 않는다.
와인과 포도주스의 차이는 알코올뿐인가
알코올만 다른 것이 아니다.
발효 중 당이 줄고 알코올과 여러 향미 물질이 형성된다. 껍질과 씨의 접촉, 발효 온도와 효모, 숙성 방식에 따라 색과 향, 산도에 대한 인상, 타닌과 질감도 달라진다.
와인은 단순히 알코올이 들어간 포도주스가 아니라, 발효와 양조를 통해 새롭게 구성된 음료다.
기억할 것
와인은 기본적으로 신선한 포도 또는 포도즙을 발효해 만든 술이다.
포도가 와인의 중심 원료가 된 것은 발효에 필요한 당뿐 아니라 산, 향미 관련 성분, 색소와 타닌을 형성할 재료가 함께 들어 있기 때문이다.
와인용 포도와 식용 포도는 중요하게 보는 특성과 용도가 다르다. 그러나 식용 포도보다 와인용 포도가 언제나 더 달다고 단정할 수 없으며, 캠벨얼리처럼 생식과 양조에 모두 이용되는 품종도 있다.
알코올 발효에서는 효모가 포도즙의 당을 이용해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를 만든다. 발효에 관여하는 효모는 포도와 포도밭뿐 아니라 양조 환경에서 유래할 수 있고, 양조자가 선발된 배양 효모를 넣기도 한다.
포도의 달콤한 향과 와인의 실제 단맛은 같지 않다. 드라이한 와인에서도 잘 익은 과일을 떠올리게 하는 향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완성된 와인의 성격은 어느 한 요소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품종이 가능성의 범위를 만들고, 산지와 빈티지가 포도를 익히며, 수확과 양조와 숙성의 선택이 그 가능성을 한 병의 와인으로 완성한다.
와인을 이해하는 출발점은 이름을 많이 외우는 것이 아니다. 포도가 어떤 조건에서 자랐고 어떻게 와인으로 바뀌었는지를 잔 안의 향과 맛에 연결해 보는 것이다.
추천 자료
Jancis Robinson 편, The Oxford Companion to Wine
포도 재배와 품종, 산지, 양조, 역사와 문화까지 폭넓게 확인할 수 있는 와인 참고서다.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기보다는 궁금한 개념을 찾아보는 사전처럼 활용하기 좋다.
Jancis Robinson, Julia Harding, José Vouillamoz, Wine Grapes
와인 생산에 사용되는 포도 품종의 기원과 계통, 재배 지역과 와인 스타일을 깊이 있게 다룬다. 품종에 관한 단순한 통념보다 정확한 배경을 확인하고 싶을 때 유용하다.
Ronald S. Jackson, Wine Science: Principles and Applications
포도 재배부터 발효, 와인의 화학 성분과 감각 평가까지 과학적으로 다루는 전문 자료다. 발효와 향, 숙성처럼 상업적 설명만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을 더 깊이 확인할 때 참고할 수 있다.
국제포도와인기구(OIV)
포도와 와인의 정의, 양조 기준, 국제 통계와 기술 자료를 제공하는 정부 간 기구다. 국가와 상업 자료에 따라 설명이 달라질 수 있는 개념을 공식적으로 확인할 때 유용하다. OIV 공식 웹사이트
호주와인연구소(AWRI)
효모와 발효, 와인 결함, 양조 관리 등 실제 와인 생산과 밀접한 기술 자료를 제공한다. 자발적 발효와 배양 효모처럼 지나치게 단순화되기 쉬운 주제를 검토할 때 도움이 된다. AWRI 공식 웹사이트
나의 경험
이 부분은 처음 기억에 남은 와인, 포도주스와 전혀 다르다고 느꼈던 순간, 달콤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드라이했던 와인 등을 기록하는 공간으로 남겨둔다.
와인에서 포도 이외의 과일·꽃·허브·향신료 향을 처음 발견한 경험이나, 같은 품종의 서로 다른 와인을 마시며 예상보다 큰 차이를 느낀 경험도 기록해볼 수 있다.
처음부터 전문적인 테이스팅 노트를 쓸 필요는 없다. 와인의 이름과 품종, 산지, 빈티지를 적고 다음 세 문장만 남겨도 좋다.
- 마시기 전에 무엇을 예상했는가?
- 실제로 가장 먼저 느낀 향과 맛은 무엇이었는가?
- 다시 마시고 싶은가? 그렇다면 무엇 때문인가?